■ 일제의 ‘요시찰’ 감시망 속의 재일한인유학생의 2·8독립운동 | 윤소영 1. 머리말 2. 일제의 ‘요시찰’ 감시망 속의 재일한인유학생 3.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와 ‘데모크라시’에 열광하는 청년들 4. 2·8독립운동의 시동 5. 2·8독립운동의 준비와 결행 6. 맺음말
■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파리한국대표부’와 김규식의 외교활동 | 이장규 1. 머리말 2. 한국대표부의 對 파리강화회의 활동 3. 국제사회의 후원과 연대 활동 4. 맺음말
제3부 타자의 눈으로 바라본 3·1운동
■ 독일 외무부 보고서를 통해 본 독일 정부의 3·1운동 인식 | 황기우 1. 머리말 2. 청도(교주만)와 독일의 동아시아 전략 3. 교주만 문제와 3·1운동 4. 3·1운동에 대한 최초의 독일 외무부 보고서 R18897 5. 3·1운동에 대한 독일 외무부의 새로운 인식 6. 맺음말
■ 러시아 내전기 외교관 류트쉬의 기록으로 본 3·1운동 | 홍웅호 1. 머리말 2. 류트쉬의 고종 사망에 대한 보고와 조선 인식 3. 류트쉬의 3·1운동에 대한 기록 4. 맺음말
■ 일본신문에 나타난 3·1운동과 손병희론 | 윤소영 1. 머리말 2. 3월 상순의 보도 논조 3. 손병희에 대한 폄훼 보도 재검토 4. 3월 중순 이후 보도 논조 5. 요시노 사쿠조(吉野作造)의 손병희와 천도교론 6. 맺음말
한국근대사에서 커다란 이정표를 만든 3·1운동은 한국인 사회에서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주체가 등장했음을 만천하에 폭발적으로 알렸다. 한국인의 근대를 압축적으로 표출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청년학생과 여성이 운동 과정에서 스스로 활약하며 새로운 사회적 역할을 능동적으로 수행할 수 있음을 증명하였다. 사서삼경이란 기본 텍스트를 바탕삼아 쌓아 온 유학 지식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해법을 찾는 대신, 서구적 지식체계와 가치관을 기본 바탕으로 세계를 이해하고 한국인의 진로를 고민하는 새로운 지식인들이 사회 지도층으로 등장했음을 본격적으로 알린 사건이 3·1운동이었다. 문자로 한국의 역사가 기록된 이래 피지배층 내지는 민중이 자신의 이익과 권리를 위해 조합과 같은 단체를 조직하고, 일회성 또는 국지적인 한계를 벗어나 일상적으로 그러면서 전국 단위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계기도 3·1운동이었다. 새로운 주체들은 독립 이후의 신한(新韓)에서 절대군주제를 다시 세우는 꿈을 꾸지 않았다. 민(民)이 주권을 갖는 민주공화주의를 추구하는 국가를 세워야겠다고 상상하였다. 새로운 주체들의 활동과 존재적 의미 그리고 그들이 추구한 가치관은 오늘날까지 한국사회에서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에서 3·1운동은 현재진행형이다. 달리 보면 한국사회에서 대중민주주의가 본격적으로 출발한 역사적 체험 공간이 3·1운동이다. 일본으로부터 독립하는 위대한 선택이 한국 민주주의 발전의 기본 전제임을 체험한 사건이 3·1운동이었다. (총론 中)
필자 소개
신주백 |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소장 전상숙 | 광운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 홍선표 | 나라역사연구소 소장,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겸임교수 반병률 | 한국외국어대학교 사학과 교수 정병준 | 이화여자대학교 사학과 교수 윤소영 |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연구위원 이장규 | 파리 디드로대학 박사과정 황기우 | 서울시립대학교 강사 홍웅호 | 동국대학교 대외교류연구원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