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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길 _윤동주
2일. 아우의 인상화(印象畵) _윤동주
3일. 숨ㅅ기 내기 _정지용
4일. 노래 - 내가 죽거든 _크리스티나 로세티
5일. 이월 햇발 _변영로
6일. 못 잊어 _김소월
7일. 잠 놓친 밤 _변영로
8일. 사랑하는 까닭 _한용운
9일. 슬픈 족속(族屬) _윤동주
10일. 하이쿠 _료칸
11일. 모란봉에서 _윤동주
12일. 여우난골족 _백석
13일. 비로봉 _윤동주
14일. 하이쿠 _고바야시 잇사
15일. 두보나 이백같이 _백석
16일. 십자가 _윤동주
17일. 산협(山峽)의 오후 _윤동주
18일. 목구(木具) _백석
19일. 하이쿠 _가가노 지요니
20일. 나는 왕(王)이로소이다 _홍사용
21일. 시계 _권환
22일.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_백석
23일. 기다리는 봄 _윤곤강
24일. 새벽이 올 때까지 _윤동주
25일. 팔복(八福) _윤동주
26일. 달 좇아 _조명희
27일. 이별 _윤동주
28일. 묻지 마오 _장정심
29일. 고독 _노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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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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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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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안을 가진 열 명을 포함한 천 명의 학자가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한 명의 천재, 한 명의 발명가, 한 명의 창조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식을 가진 사람은 몇 천 명이나 됩니다. 이 세상에는 셀 수 없이 많은 훌륭한 사람과 앞으로 훌륭하게 될 사람 들이 있겠지요. 그렇지만 나는 나의 훌륭함이 마음에 듭니다."
-에곤 실레 <페슈카에게 보낸 편지,1910>


독자들로부터 은근한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는 열두 개의 달 시화집이, 에곤 실레의 그림이 실린 에곤 실레 편을 끝으로 완간되었다. 2월편이자 시리즈의 완성본인 2월편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에는 겨울 끝자락의 감성이 묻어나는 에곤 실레의 그림 44점과 윤동주, 백석, 노천명 등의 시 29편이 실렸다.

28세에 요절한 오스트리아의 천재 화가, 에곤 실레
에곤 실레의 그림과 시로 만나는 내면의 세밀한 감성!

"내게 예술이 없었다면 지금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나는 생을 사랑한다. 나는 모든 살아있는 존재의 심층으로 가라앉기를 원한다." -에곤 실레


에곤 실레는 1890년에 태어나 1918년에, 28세의 나이로 요절한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표현주의 화가이다. 도나우 강이 흐르는 작은 시골마을 툴른에서 태어났으며, 철도역장이었던 아버지 덕에 유복한 생활을 했다. 하지만 실레가 15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의 병과 죽음으로 집안은 일순간에 무너져내렸고, 매독에 걸린 아버지가 정신 착란 증세를 보이며 죽어가는 모습을 고통스럽게 지켜봐야 했다. 그래서인지 ‘성(性)’은 그의 인생에 각인되었고, 실레의 그림에는 자신의 뜨거운 성적 욕망, 삶과 죽음에 대한 열망과 공포가 드러나 있다.
실레는 오스트리아 최고의 미술학교를 다니다 고리타분하다는 이유로 자퇴했다. 열여섯 살, 역대 최연소 학생이라는 칭송을 받으며 영예롭게 입학했는데 말이다. 그 학교는 구스타프 클림트가 다녔던 학교이기도 했는데, 이후 실레는 클림트를 직접 차이후 실레는 로운 입학이었으며, 겨우 열여섯 살이었는데 말이다. 학교를 그만둔 실레는 1907년 클림트를 만나게 되었고, 클림트는 젊은 화가에게 친절한 멘토가 되어 주었다.
. 오스트리아 최고의 미술학교였고 역대 최연소라는 영예로운 입학이었으며, 겨우 열여섯 살이었는데 말이다. 학교를 그만둔 실레가 당대 예술가 중 유일하게 존경한 인물은 클림트(Gustav?Klimt, 1862~1918년)였다. 그는 전통미술로부터의 분리를 주장하며 ‘빈 분리파’를 창립한 수장으로 당시 빈 미술계에서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었다. 반골 성향으로 똘똘 뭉친 둘은 첫눈에 서로를 알아봤으리라. 클림트는 선뜻 실레의 스승을 자처한다.
실레에게 특별히 관심을 가져서, 그림을 사주고, 자신의 그림과 교환하기도 하고, 모델을 주선해주기도 하였으며, 후원을 해줄만한 사람에게 소개하기도 하였다. 또 실레를 분리주의와 연결되어 있는 비엔나 워크샵에도 소개하였다. 실레는 클림트를 스승 삼아 실력을 쌓아 나갔다. 하지만 곧 스무 살에 자기만의 그림 스타일을 구축했지만 어린 소녀들을 그린 누드화가 문제가 되어 투옥되기도 했다.
“내 그림과 드로잉이 에로틱하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에로틱한 그림도 언제나 예술이었다. 이제껏 에로틱한 그림을 그린 화가가 나 한 명인가?”?
죽어서까지 끊임없이 논란을 몰고다닌 그의 작품 세계를 '비틀림의 미학'이라 부르기도 한다.?에로틱한 누드화를 주로 그리기는 했으나, 그는 풍경화에도 재능이 뛰어났고, 아무런 교육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15살에 그렸다는 그의 풍경화는 놀라움을 자아낸다.
열두 개의 달 시화집의 2월 편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는 에곤 실레의 그림과 시를 엄선하여 조화롭게 엮은 시화집이다. 노천명의 <고독>, 윤동주의 <길>, 변영로의 <이월 햇발> 등 겨울 끝자락을 노래하는 시와, 고독과 외로움을 표현한 실레의 그림이 감상의 격을 높인다. 매일 한 편의 시와 한 점의 그림을 느끼는 여유를 선사하는 시화집이다.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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