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 30~31] 누구든 처음에는 글을 쓰는 것이 어렵다. 남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될까? 또는 나를 드러내도 될까? 등의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이다. 또 처음에는 자신의 힘든 고통, 감정을 쓰기 어렵다. 그러나 이런 두려움을 극복하고 용기를 내어 지속적으로 글을 써야 한다.
애덤스는 치유(치료)적 글쓰기를 통해 지속성, 해방감, 신뢰성, 반복, 현실 받아들이기, 나 자신과의 만남, 대화, 자의식과 자존심, 투명성, 치유의 증거를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매일 조금씩 쓰다보면 나를 깨우치고, 스스로 돌아볼 수 있게 된다. 한 줄 한 줄씩 써내려가다 보면 예전의 고통스런 나를 현재의 내가 위로하고 보듬어주는 현상을 발견한다. 그렇게 쓰다보면 내면의 변화를 겪게 된다.
나도 모르게 편안해진다. 감정의 기복도 줄어든다. 결국 글쓰기를 통해 나를 치유하는 과정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반복되면 나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오늘이라도 치유적 글쓰기를 통해 나를 돌아보면 어떨까?
[P. 118~119] 일본작가 요시모토 다카아키는 “저자의 이해도가 깊으면 깊을수록 아무리 어려운 내용이라도 알기 쉬운 표현으로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즉 독자를 위해 어려운 전문용어는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단어로 바꾸어 보자. 글이나 책은 초등학교 6학년에서 중학교 2학년 정도 아이들이 읽어도 이해가 될 수 있게 쉽게 쓰는 것이 좋다.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 작가는 독자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구체적으로 전문성에 빠지지 않고 어떻게 하면 쉽게 이해되는 글을 쓸 수 있을까? 가상의 독자 한 명을 생각한다. 그 가상의 독자가 어리면 어릴수록 좋다. 그에게 내가 알고 있는 전문지식을 알기 쉽게 풀어서 설명해본다. 정말 바꿀 수 없는 고유명사를 제외하고 전문용어는 다른 쉬운 단어로 대체할 수 있는지 찾아보자. 그렇게 하나씩 단어를 채워 한 문장씩 완성하자.
예를 들어 내가 쓴 책 중에 《땅 묵히지 마라》도 이런 식으로 집필했다. 도시공학을 전공하여 오랫동안 땅 인허가 관련 일을 했다. 그 지식과 경험도 어떻게 보면 전문가로 볼 수 있다. 땅을 아예 모르는 한 사람을 생각하고 그에게 설명하듯이 썼다. 땅의 용도지역이 주거지역, 상업지역, 공업지역 등도 전공서적에 나와 있는 용어 정의대로 쓰지 않았다.
‘주거지역은 말 그대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집들이 모여 있는 땅이다’라는 말로 쉽게 풀어냈다. 그렇게 쓴 결과 읽어보니 땅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어 좋았다는 의견이 많아 기분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