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제관련정보: 철기의 생애와 사상은 혼돈의 시대에 미래를 위한 '우둥불' 이범석의 호는 "철기"임 인쇄자료(책자형)로도 이용가능 접근방법: World Wide Web 이용가능한 다른 형태자료:군인 이범석을 말한다 바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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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왜 지금 철기 이범석을 재조명하고, 국군 건설의 아버지를 논해야 하는가? 그것은 청산리전투로부터 시작하는 항일무장투쟁과 초대 대한민국 국방부장관으로 국군을 건설하였던, 철기의 ‘군인’으로서의 40여 년 긴 역정을 통해 대한민국 국군의 자존감과 대외적 권위, 즉 정통성의 중심이 어디에 있고, 그 굵기는 어느 정도인지를 제대로 알리고 인식시킬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군의 정통성을 중요시하는 이유는 정통성이 국군의 모든 활동에 권위를 부여하고, 소속원들에게는 자부심을 갖게 하면서, 국민들로부터는 무한한 존경과 사랑을 받을 수 있게 하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근대 사회학의 권위자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는 국가나 조직의 정통성 확보 요건으로 전통적 권위(Traditional authority), 카리스마적 권위(Charismatic authority), 합리적.법적 권위(Rational.Legal authority) 등 3가지를 주장하였다. 전통적 권위는 인적 연계성으로부터 확보되는 권위를 의미하며, 카리스마는 뛰어난 업적을 통해 권위를 확보하는 것을 말한다. 합리적.법적 권위란 제도적 측면에서 권위를 확보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군의 인적 정통성 연원을 항일무장투쟁기까지 올리게 되면 2개의 해결해야 할 과제에 봉착한다. 하나는, 항일무장투쟁을 하였던 사회주의 내지는 공산주의 계열의 항일무장투쟁 경력자들의 포용 문제다. 그들은 천황제를 부정하는 공산주의를 배격하였던 일제에 대항하여, 사회주의 건설 내지는 항일무장투쟁의 방편이라는 목적을 갖고 투쟁하였다. 살아남은 자 중 상당수는 종전 후 북한으로 들어갔고, 6.25전쟁시 전 한반도 사회주의화를 위하여 대한민국을 공격하기도 하였다. 다른 하나는, 일제 강점기 일본군 또는 그 괴뢰 만주군이었으나, 정부수립 후 국군이 되어 6.25전쟁에서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한 공이 있는 인사들에 대한 평가다. 그들은 일제 36년 긴 질곡 속에서 직업의 방편으로 일본군 또는 만주군이 되었거나, 아니면 황군으로 출세하기 위하여 그 군대로 들어갔다. 국군의 정통성을 항일무장투쟁(또는 독립전쟁)기까지 올리면 인적 정통성은 이렇게 복잡해진다. 그런 까닭인지는 몰라도 지금껏 한국군의 인적 정통성은 광복 이후 자유대한민국 수호에 역할을 하였던 인사들로 한정되어 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헌법은 ‘임시정부 법통 계승’과 ‘자유민주제도 유지’를 동시에 천명함으로써 국군의 정신적 전통은 '항일무장투쟁의 가치'와 '자유대한민국 수호전쟁의 가치'를 동시에 존중해야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서, 두 개의 가치 모두에 해당한다면 문제가 안 되겠지만, 현실적으로 사람에 따라 하나의 가치에만 해당되거나, 아니면 하나에는 해당되나 다른 가치에는 충돌하는 경우가 나타날 수 있다. 문제는 후자에서 발생한다. 어느 가치에 더 비중을 둘 것인가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 평가는 결국 각자 배움의 결과에 달려 있을 것이다. 배움이 짧은 사람은 근시 내지는 외눈으로 보거나, 또는 사시로 볼 것이다. 제대로 배운 사람은 두 눈으로 바르게, 그리고 균형 있게 볼 것이다. 여기에 기준이 있다. 바로 후세에게 교육적 측면에서,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 것이 정도인가의 기준이다. 이를 기준으로 객관적이고 신중한 접근을 통해 원칙을 분명히 세운 가운데 공과 과를 균형 있게 따져 보아야 할 것이다. 철기 이범석은 두 개의 가치 모두를 구현하였던 상징적인 인물이다. 이 책은 그 하나하나를 따지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철기의 삶 자체에서 던지는 메시지를 통해 한국군 정통성에 관해 어떤 원칙과 포용성을 가져야 하는가를 나타내고자 하였다. 철기는 실용주의자였다. 그는 민족주의자이자 반공주의자였지만 무조건적이고 극단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원칙이 있었다. 그 원칙 아래 배제할 것은 배제하고 포용할 것은 포용하였다. 철기는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사회주의자를 포용하였지만 자유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친북 공산주의는 확실히 배격하였다. 그러면서 연합국방이라는 정책으로 미군과의 연합을 추구하였다.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혼자 힘만으로는 안 되며 그 대상은 미국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화려한 30년 항일무장투쟁 경력을 가진 철기는 국방장관이 되면서 미군정 국방경비대의 주축이었던 구 일본군과 만주군 세력을 포용하는 실용주의적 자세를 견지하였다. 그러면서 그들을 배제하는 대신 광복군 세력과 일반 엘리트들로부터 군 간부를 대폭 충원하고 국군의 정통을 광복군에 두는 정책을 시행하여 국군의 정통성을 바로 세웠다. 철기로 인해 국군 정통성의 중심은 바로 서면서 한강과 같이 넓고도 도도한 형세가 만들어져 그 다음을 준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다음이란 바로 6.25 자유수호전쟁을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그를 재조명해야 하고, 그를 국군 건설의 아버지라고 불러야 하는 것이다. 20세기 초 이래 한반도 상공에 맴돌고 있던 항일과 친일, 반공과 용공이라는 두 개의 전선이 아직 그대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우리 사회는 지금 여기에 지나치게 얽매여 있어 앞으로 제대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사적 수레바퀴는 우리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지금도 쉬임 없이 앞으로 전진하고 있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철기의 민족주의와 반공주의, 그리고 실용주의로 특징짓는 그의 생애와 사상이 독자들에게 이 혼돈의 시대에 미래를 위한 ‘우둥불’과 같은 역할을 했으면 한다.